만적의 이름 옆에 놓이는 말이 있습니다. “장상에 어찌 씨가 있겠는가.” 이 문장은 만적의 자필 글에서 읽는 것이 아니라,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실린 발언으로 만나게 됩니다.12
그렇다면 누가 남겼을까요? 지금 읽는 두 사서는 만적이 살던 당시보다 뒤인 조선 초에 편찬됐습니다. 『고려사』는 정인지 등이 1451년에, 『고려사절요』는 김종서 등이 1452년에 편찬한 역사서입니다.3 편찬자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현장에서 발언을 듣고 곧바로 받아 썼다는 뜻은 아니에요. 후대 사서가 어떤 장면의 말로 전하는지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고려사』에서는 만적의 이야기가 최충헌 열전에 들어 있습니다. 독립된 ‘만적전’을 펼치는 구조가 아니에요.1 기록의 처음은 만적 등 여섯 명이 북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공노비와 사노비를 모아 모의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다음 말이 나옵니다.
將相寧有種乎
장수와 재상에 어찌 타고난 씨가 있겠는가.1
앞 문장에는 낮은 신분에서 높은 관리가 된 사람들이 언급됩니다. 뒤에는 때를 만나면 자신들도 될 수 있다는 말과 채찍 아래의 고통을 호소하는 말이 이어져요.1 출신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생각에, 이미 그 경계를 넘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례로 맞서는 말입니다. 앞에서 본 사례를 근거로, 지금 모인 이들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설득하는 흐름을 가집니다.
따라서 이 기사를 설명하면서 ‘처형 직전에 외친 마지막 말’이라는 장면을 보탤 수는 없습니다. 체포와 죽음은 거사 계획, 재집결 약속, 순정의 밀고를 서술한 다음에 나옵니다.1 유명한 문장 하나만 기억하면 앞뒤를 마음대로 채우기 쉽지만, 기록에서는 아직 사람을 모아 계획을 나누는 대목에 놓여 있어요.
두 기록 사이에 남는 한 구절
『고려사절요』의 기사는 신종 원년, 1198년 음력 5월에 놓입니다. 이쪽에는 만적과 함께한 다른 다섯 사람의 이름도 적혀 있어요. 『고려사』가 이 대목에서 여섯 명이라고만 쓰는 것과 다른 정보입니다.21 만적 기사에 한해서도 인원수만 적힌 쪽과 이름까지 적힌 쪽이 달라, 한 책만 읽으면 보이지 않는 정보가 생깁니다.
거사 계획에서도 차이가 나타납니다. 두 기록 모두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내용을 전합니다. 그런데 『고려사』에는 문서를 불태운다는 말 다음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使三韓無賤人
삼한에 천인이 없게 한다.1
『고려사절요』의 해당 문장은 노비 문서를 불태운다는 내용에서 공경장상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위 구절은 보이지 않습니다.2 이 구절로 신분철폐의 뜻을 설명하려면, 그 근거 문장을 『고려사』에서 읽었다고 밝혀야 합니다. 두 책에 똑같이 실린 말처럼 합쳐 인용할 수는 없어요.
‘천인이 없게 한다’에 주목하면 자기들만 신분을 올리는 일을 넘어 신분 질서 전체를 뒤집으려는 구상이 두드러집니다. 반면 두 기록에 함께 있는 높은 지위의 획득도 지워서는 안 됩니다. 노비 신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요구와 권력을 차지하려는 계획이 같은 대목에 함께 놓여 있기 때문이에요.12 둘 중 하나만 남겨 현대의 평등 선언문처럼 매끈하게 정리하면, 실제 문장에 남은 긴장이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한쪽에 없는 구절을 보고 어느 사서가 의도적으로 숨겼는지까지 바로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직접 확인한 것은 수록 문장의 차이입니다. 그 차이가 생긴 편찬 과정을 밝히려면 별도의 근거가 필요해요. 『고려사절요』도 『고려사』의 단순한 축약본으로만 다루기 어려운, 서로 보완되는 사서로 설명됩니다.4
두 사서에서 만적의 발언은 노비들이 모의하는 장면에 놓여 있습니다. 누가 어떤 목소리로 외쳤는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한 명씩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이 기사에서 알 수 없어요. 그 빈칸을 극적인 장면으로 채우지 않고도, 채찍 아래의 생활을 거부하며 자신들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은 충분히 선명합니다.1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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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 사료 DB, 『고려사』 권129·열전42·반역·최충헌, 「만적이 변란을 모의하다 처형당하다」. 첫 만적 문단의
謀曰뒤 발언, 노비 문서 소각과使三韓無賤人, 뒤의 밀고·체포 순서를 읽었습니다. 인용한 두 한문 구절의 한국어는 이 글의 풀이입니다. ↩ ↩2 ↩3 ↩4 ↩5 ↩6 ↩7 ↩8 ↩9 -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 사료 DB, 『고려사절요』 권14·신종 원년 5월, 「만적이 노비들과 반역을 도모하다 처형당하다」. 일자 표제의 1198년 음력 5월, 첫머리 여섯 사람의 이름, 장상 발언과
焚其賤籍뒤 문장의 연결을 확인했습니다. 『고려사』의使三韓無賤人에 대응하는 구절은 이 기사에 없습니다. ↩ ↩2 ↩3 ↩4 -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 사료 DB 소개. ‘정사류’에서 『고려사』를 정인지 등이 1451년에, 『고려사절요』를 김종서 등이 1452년에 편찬한 역사서로 소개합니다. 이 숫자는 만적 사건의 발생 연도가 아니라 현재 읽는 사서의 편찬 연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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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려사절요」. ‘서지적 사항’과 ‘의의 및 평가’에서 『고려사』에 없는 기록도 포함하며 두 사서가 보완 관계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본문은 이 만적 기사에서 확인한 문장 차이를 넘어 편찬 의도를 확정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