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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 실록에는 ‘이달’이라고 적혀 있어요

‘훈민정음’ 옆에 연도가 둘 있습니다. 문자 창제는 1443년, 그 문자를 풀이한 책의 완성은 1446년으로 설명해요.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도 같은 이름이 문자와 해설서를 가리킨다고 구별합니다.1

한국사 연표에서 보는 ‘창제’와 ‘반포’를 이 차이에 붙여 읽으면, 앞의 문자가 뒤의 해설서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날짜까지 자세히 적으려고 실록을 열면 다른 질문이 생겨요. 화면에는 특정 날짜가 붙어 있는데 본문은 ‘이날’이 아니라 ‘이달’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23

늦은 기록의 ‘이루어졌다’부터 읽어볼게요

세종실록의 1446년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3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3

새 글자를 그때 처음 만들었다고 읽으면 앞의 창제 연도와 충돌하겠죠. 여기서 우리역사넷의 구별이 필요해요. 훈민정음은 문자의 이름이면서, 그 문자를 설명한 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루어진 대상을 책으로 읽으면, 새 문자를 만든 일과 그 문자를 설명한 책을 완성한 일이 차례로 놓입니다.1

실록의 번역문도 책 이름에 《 》를 붙여 표시하고 있습니다. 원문의 첫 문장은 ‘是月, 訓民正音成’이에요. 그 뒤에는 세종이 지은 글과 정인지의 서문이 이어져요.3 이 번역 표시와 뒤에 실린 내용이 책이라는 맥락을 함께 보여줍니다.

정인지의 서문에는 계해년 겨울에 정음을 처음 만들었다는 회고가 나오고, 뒤에서는 자신과 신하들이 해석과 범례를 지었다고 설명합니다.3 문자를 만든 일과 문자를 풀어 설명한 일을 한 문장으로 합치지 않는 이유가 기록 안에도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서문의 정인지 이름을 보았다고 문자 창제자를 그대로 정인지로 바꾸어 적을 수는 없어요. 서문을 쓴 사람, 해설 작업에 참여한 사람, 문자를 만들었다고 기록된 사람은 글 안에서 맡은 일이 다릅니다. 실록의 ‘친히 지었다’와 서문의 ‘해석과 범례를 지었다’가 각각 누구에게 이어지는지 보면 역할이 갈립니다.23

앞선 기록에는 ‘친히 지었다’고 나옵니다

이번에는 앞선 창제 기록으로 돌아갑니다. 실록 사이트는 이 기사를 세종 25년, 1443년의 기록으로 제시하고 있어요.2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2

국역 첫 문장의 일부입니다. 뒤에서는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하여 글자를 이루는 방식을 설명하고, 그 이름이 훈민정음이라고 덧붙여요.2 앞선 기사는 이미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연도 사이에 시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앞의 것은 미완성 글자이고 뒤에야 완성품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탤 수는 없어요. 우리가 지금 읽은 기록은 문자 창제와 해설 작업을 구별할 근거를 줍니다. 그 사이의 모든 작업 과정과 대화까지 전해주는 기록은 아닙니다.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라는 필기만 남기면 문자를 창제한 일과 해설서를 완성한 일이 같은 문장으로 겹칩니다. ‘새 문자를 창제’와 ‘그 문자를 풀이한 해설서의 완성’으로 풀어 써보면 앞뒤 사건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한국사 사료에서 사건의 선후를 읽을 때도 이 구별을 사용할 수 있어요.

두 기록에 공통으로 남은 말은 ‘이달’입니다. 창제 기사의 화면 표제에는 12월 30일, 책의 완성 기사에는 9월 29일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첫 문장은 특정일을 말하지 않습니다.23 사이트에서 기사가 어느 날짜 아래 놓여 있는지와 문장이 사건 시점을 얼마나 좁혀 말하는지는 나누어 읽어야 해요.

그렇다면 한글날은 정확한 창제일인가요?

한글날은 창제일을 그대로 옮겨 정한 날이 아닙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는 날로 설명하고, 해례본 정인지 서문의 날짜가 기념일을 정하는 근거가 되었다고 안내합니다.4

그 서문에 적힌 때는 1446년 음력 9월 상한입니다. 상한은 상순, 곧 한 달의 1일부터 10일까지를 가리켜요.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그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삼았습니다.4 서문에 양력 날짜가 직접 쓰여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설명을 읽고서 당시 바로 그날 반포식이 열렸다고 장면을 만들어내면 기록보다 멀리 갑니다. 국립국어원에 실린 해설은 반포의 공식 행사를 열었다는 기록이 없다고 지적하며, 해당 실록의 완성을 원고 완성 보고로 해석합니다.5

박물관은 책의 간행·반포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국어원에 실린 글은 원고 완성과 실제 간행·반포를 더 엄격히 나누어 읽어요.45 공공기관에 실린 해설끼리도 이 지점의 해석은 다릅니다. 위 자료들을 근거로 특정 하루의 반포일이나 행사 장면까지 확정할 수는 없어요.

학습용 연표의 짧은 구분에는 문자 창제와 해설서라는 관계를 붙일 수 있습니다. 사료의 정확한 일자를 설명하려고 할 때에는 ‘이달’이라는 범위가 남아요. 실록의 날짜 표제, 본문의 시간 표현, 훗날 정한 기념일은 서로 관련되지만 같은 정보는 아닙니다.

Footnotes

  1.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훈민정음」의 '1 개요'에서 1443년 창제된 문자와 1446년 한문 해설서라는 두 의미를 확인했고, '5 훈민정음을 해설한 책'에서 해례본의 설명을 읽었다. 문자의 창제와 책의 완성을 구별하는 근거로 사용했다. 문자와 책의 이름 ↩ ↩2

  2.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의 「훈민정음을 창제하다」에서 세종 25년 12월 30일·1443년이라는 표제, 국역 첫 문장의 '이달'·28자, 원문의 是月과 친제 표현, 뒤의 초성·중성·종성 설명을 확인했다. 인용은 국역의 짧은 일부이며 표제 일자를 실제 창제일로 확정하지 않았다. 창제 기록 원문과 국역 ↩ ↩2 ↩3 ↩4 ↩5 ↩6

  3.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의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 어제와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에서 세종 28년 9월 29일·1446년 표제, 첫 문장 是月·訓民正音成과 번역문, 정인지 서문 속 계해년 겨울의 창제 회고 및 해석·범례 작업을 확인했다. 책의 완성 기록 ↩ ↩2 ↩3 ↩4 ↩5 ↩6 ↩7

  4.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는?」의 '훈민정음과 ≪훈민정음≫'에서 문자·책과 반포 기념을, '1940년, 한글날은 10월 9일' 단락에서 1446년 9월 상한, 상한의 뜻과 기념일 환산 설명을 확인했다. 본문은 기관의 환산 설명을 소개하며 역법을 자체 계산한 결과가 아니다. 한글날 날짜의 근거 ↩ ↩2 ↩3

  5. 국립국어원 「알고 싶은 한글」의 한글날 날짜 해설에서 두 실록 기사가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 월말에 놓인다는 설명, 완성 기사를 원고 완성 보고로 읽는 해석, 공식 반포 행사 기록이 없다는 지적을 확인했다. 박물관 설명과 모든 세부 해석이 같다고 합치지 않았다. 완성과 반포를 구별하는 해설 ↩ ↩2